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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jin Park
Frontend Dev

계승과 단절
2018. 3. 30.

모든 사람은 기록을 남기고 살아간다. 그 기록의 모습이 기억과 같이 형태가 없는 것이든, 글자와 같이 형태가 있는 것이든, 어떤 사람의 기록이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도 남아 있고 비록 중간에 유실되는 경우는 있지만 계속해서 이어져 내려온다. 그리고 이렇게 사람들의 기록은 모이고 모여 문화가 되고, 전통이 되고, 유산(遺産)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유산이라고 하면 유산 상속 등에서의 금전적 개념이나 무형 문화유산의 계승 등 다소 긍정적인 뜻을 품고 있다. 그러나 영어에서 유산에 대응되는 단어인 레거시(Legacy)는 정말 상속되는 금전의 의미에서의 유산이라는 뜻으로도 쓰이지만 한편으로는 계속해서 쌓인 적폐나 어쩔 수 없이 남아 있는 처치곤란한 것들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을 때도 많다. 대표적으로 환경 오염을 현재 세대가 미래 세대에 남기는 유산이라고 표현하고, 컴퓨터 프로그래밍에서 레거시라고 한다면 개발사가 울며 겨자 먹기로 지원하는 옛날에 만들어진 프로그램을 뜻한다. 대표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운영 체제는 레거시를 철저히 지원하고, 애플은 소프트웨어를 만들 때 레거시 지원에 무척 인색한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 주변 사람들을 보거나 뉴스를 통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 나아가 전세계의 사람들을 접하다 보면 기존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것을 내놓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많은 수의 신제품들이 "저는 이렇게나 새로운 기능이 많아요!"라거나, "이 제품은 다른 제품과는 완전히 근본부터 다릅니다!"라거나, "이것은 전무후무, 공전절후(空前絶後)의 혁신입니다!" 등의 광고 문구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한다. 그리고 소비자, 특히 얼리 어답터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기존의 것에는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맨다. 이렇게 새로 나타난 기술 중 게임이나 전자 기기와 같이 사람들이 열광하는 기술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속도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고 우리 생활의 편리함을 증진시키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플래그십 스마트폰의 성능은 1년마다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여 최근 기기의 성능을 보면 거의 전통적인 저전력 PC 수준이거나 그 이상의 모습을 보여 준다.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일도 무척이나 많아져서 최근에는 대부분의 스마트폰으로 결제는 물론이고 교통카드, 본인 인증, 간단한 사무 업무까지 못 하는 일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 이러한 혁신이 정말 포장하는 대로의 혁신인가?

지난 몇 년간 성공했다고 불리는 혁신은 많다. 그러나 그 중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끼칠 정도로 체감할 수 있는 성공한 혁신은 얼마나 되는가? 그리고 그 혁신 중에서 광고하는 대로 기존 제품들과 확연히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얼마나 되는가? 스스로 무척 다르다고 광고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돌이켜보면 그다지 크게 다르지 않거나 왜 다르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는 것이 참 많지 않은가? 2016년, 한 회사는 플래그십 스마트폰의 일부분을 모듈형으로 만든 후 혁신이라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음성 출력 개선 모듈이나 두 번째 카메라 버튼 추가 정도가 모듈형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의 전부였다. 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의 옆면이 아닌 뒷면에 버튼을 배치한 것도 혁신이라고 한다. 게다가 이제는 새로운 색상을 추가한 것도 혁신이라고 한다. 그리고 기자들은 새 스마트폰이 발표되었는데 자신들이 보기에 큰 변화점이 그다지 보이지 않으면 "혁신은 없었다" 등의 자극적인 제목으로 독자들을 끌어모은다. 그리고 독자는 이에 흥분하여 새 제품을 개발하는 기간에 무엇을 했느냐고 인터넷 댓글 등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쏟아낸다.


혁신이라고 하는 말이 정말 완전히 새로운 것에만 국한되는 말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려고 한다. 혁신의 대명사 아이폰과 같이 근본부터 다른 제품을 만들어야만 혁신인가? 애초에 아이폰이 정말 기존의 전화기와 비교했을 때 공통점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다른 제품인가? 나아가, 최근 수많은 사람들이 부르짖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완전 신개념의 혁신적인 앱'만이 성공의 길인가?

세상에는 과거의 사람들이 남겨 놓은 유산이 너무나도 많고 그 중에는 더 발전시켜야 할 부분과 개선해야 할 부분이 넘친다. 특히 과거부터 내려오는 불편한 부분을 더욱 편리하고 합리적으로 쓸 수 있도록 바꿈으로써 얻을 수 있을 편의의 증진과 이득은 무궁무진하다. 대표적인 예로 각종 은행 앱이 강제하는 불편한 보안 매체 및 공인인증서 인증을 수행하느라 소액 송금에 몇 분씩이나 걸렸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불평을 쏟아냈고 이를 개선한 다양한 간편 송금 앱은 사용자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과거 그리고 현재에도 네이버 지식인이나 각종 포럼에는 수많은 질문과 답변이 산발적으로 흩어진 채 검색도 불가능한 채로 죽어 가고 있다. 그리고 수 년 전 혜성같이 등장한 StackExchange 계열 사이트들은 중복 질문을 강하게 규제하고 게시글의 검색 편의성을 높임으로써 사용자 맞춤 검색 결과를 제공하고 있고,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전세계의 사용자들이 몰리고 있다. 이렇게 세상에는 우리가 느끼고 있지만 고쳐야겠다고 생각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너무 익숙해져서 인식하지조차 못하고 있는 불편함이 너무나도 많다. 이러한 불편을 개선하여 사람들이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야말로 진짜 혁신이 아닐까? 그리고 이것이 진짜 모두가 성공하는 길이 아닐까?

그러나 최근 사회가 흘러가는 모습을 보면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기존 어려움의 개선이나 편의를 증진하는 것을 생각하기보다는 무조건 새로운 것을 찾고 남들과 다르게 보이는 것에 가능한 노력을 모두 쏟는다. 사실 사람들이 혁신으로 인정하는 물건이나 문화를 보면 이전과 완전히 단절되어 혜성같이 나타난 것들은 잘 없지만 말이다. 개선이 필요해 보이는 것들은 정말 대단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의 경우 배터리 문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렇기에 보조 배터리는 이제 현대인의 필수품이 되었다. 그러나 스마트폰 제조 회사들은 배터리 용량을 대폭 늘리기보다 쉽게 눈에 보이는 성능을 올려 배터리 전력 소모량을 증가시키고, 이에 따라 오히려 배터리 사용 시간을 떨어뜨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 제조 업체들은 휴대폰에 새로 부품을 넣을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기존에 아무도 불편함을 토로하지 않았던 이어폰·헤드폰 연결 부분 등을 자의적으로 제거하기까지 한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혁신에 집착한 나머지 실제 사용자가 편리해지기보다는 오히려 불편해지는 경우를 주변에서 자주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전자기기 시장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사실 답은 간단하다. 새로운 것에 집착하기보다는 초심으로 돌아가서 우리가 어떤 목적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고민해 보면 어떨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원래 목적에 불필요한 부분을 찾아내어 본래 사용 목적에 충실한, 오래됐지만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자세를 가져 보면 어떨까? 당장 고민해 보아도 생활에 있어서 사소하지만 불편한 점이 참 많다. 잠시만 생각해도 맞지 않는 버스 도착 예정 시각이라거나 직관적이지 않은 노트북 트랙패드 사용법과 같은 불편함이 떠오를 정도로 많다. 생활에 있어서 이렇게 사소한 어려움을 찾는 태도를 견지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사회에 훨씬 체감할 수 있는 변화들이 많이 오지 않을까?